2023. 4. 29. 18:06ㆍRead (읽기)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투병을 하느라 집에만 있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 재밌게도 그 친구가 구입한 책 목록이 '구의 증명'하고 '세이노의 가르침'이었다. 내가 마침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기 시작한 때였다. 그냥 베스트셀러라서 나도 읽고 그 친구도 읽은 거 같으니 뭐, 어찌 보면 신기한 일도 아니다. 내 친구는 세이노이 가르침은 보다 말았다고 했다. 당장 몸이 힘들고 아픈 친구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을 내용이었던 것 같다. 친구의 표현으로는 '자기 잘났다고 잘난 척만 하는 글'이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세이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데, 잘났으니 잘난 척을 할 수밖에 없는 지도 몰랐다.
뭐 어쨌든 친구는 '세이노의 가르침'은 덮어두고 먼저 '구의 증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세이노의 가르침'을 먼저 끝내고 '구의 증명'을 읽기 시작했다. 페이지를 넘긴 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너무 놀랐다. 잉?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전개였기 때문이다. 죽은 시체를 먹는다고?? 식인에 대한 이야기였던 거야? 뭐야 도대체?
그럼 놀라움이 호기심이 되기도 했고,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으며 혼쭐이 나고 혼미해진 정신에서 다행히도 쉽게 읽히는 글이었다.
'구의 증명' - 작가의 글 중
지난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 상상을 하다 혼자 좋아 웃곤 했다. 상상 속 애인의 살은 찹쌀떡처럼 쫄깃하고 달았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종종 돌아봤다. 그리고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작가의 글을 보면, 끔찍하고 해괴한 식인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기 보다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살을 뜯어먹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단지, 한 번도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해는 잘 안 되었다.
'구의 증명' 줄거리 (세줄 요약)
구와 담은 어려서부터 늘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왔다. 계속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지만 두 사람은 늘 서로를 생각했고 사랑했고,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둘만을 의지하며 지내게 되었을 때, 구는 죽었다. 담은 구의 시체를 다른 이들이 함부로 하는 것이 싫어서 구의 시체를 먹음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구의 증명' 명대사
나는 너를 먹을 거야.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살아남을 거야.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괴롭다는 것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는 뜻이다.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모르겠다. 살아서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죽은 뒤에는 모른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뿐.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게 된다.
기억이 나의 미래.
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처음 만났을 때, 구와 나는 다른 조각으로 떨어져 있었다.함께 하던 어느 날 구와 나 사이에 끈기 있고 질펀한 감정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메워주는 퍼즐처럼,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라며 구와 나의 모나고 모자란 부분에 제 몸을 맞춰가다 어느 날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딱 맞아떨어지며 그런 소리를 낸 것이다.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다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장 가까운 감정. 우리 몸에도 마음에도 그것이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다시 태어나 다른 존재로 만난 너를 내가 사랑하게 될까. 다른 존재인 나를 네가 사랑해줄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너 아닌 그 어떤 너도 상상할 수 없고, 사랑할 자신도 없다.
-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나도 어린 시절, 이 사람이 아니면 누가 날 더 사랑하겠어? 라는 착각에 빠져 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이 '구의 증명' 이야기가 그저 끔찍하게 서로를 사랑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의 막바지에 적혀 있는 이 문장들이 작가가 사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먹어버린다는 설정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닐까.
사람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사람은 수술을 하고 약을 먹어서 죽음을 미룰 수 있다. 불을 다루고 요리해서 먹는다. 불을 다루기 전에는 생고기 생풀을 그냥 먹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인간은 동족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배만 부르면. 허기 때문이 아니라도 먹었을 것이다. 그의 손이 탐나서. 그의 발이 탐나서. 그의 머리, 그의 얼굴, 그의 성기가 탐나서. 지극히 존경해도 먹었을 것이고 위대해도 먹었을 것이다. 사랑해도, 먹었을 것이다. 그들은 미개한가. 야만적인가.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동물의 힘은 유전된다. 유전된 힘으로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다. 불과 도구 없이도, 다리와 턱뼈와 이빨만으로.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2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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